우구이스마루에 관련된 역사 아는 사니와 있니?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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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18건 작성일 17-02-05 20:34본문
워낙에 정보 알기가 힘든 영감님이라.. 너무 너무 좋아하는 최애캔데.
듣자하니 도신에 기포가 생긴 실패작이네 어쩌네 하는 얘기는 얼핏 들었던 것 같은데.
탄생부터 어물로 헌납되기 전까지의 일을 아무것도 모르겠어..ㅠㅠ
알기 힘든 영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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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91444 작성일
나랑 결혼했다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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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91446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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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91448 작성일
ㅋㅇㅅ! ㅋㅇㅅ!
내 아내한테 무슨 말이니!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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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91449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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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91447 작성일
어울릴 생각없다면서 다 지워버린게 아닐찌...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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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91452 작성일
챠할배 너무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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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91454 작성일
검이 오래 되면서 기포가 올라오고 하는 바람에 고치기 힘들거라고 한걸 겨우 무사히 수리해서 어물로 보내졌다는 정도밖에... 검색했을때 가끔 보이는 수리 당시의 내용도 실제 얘기보다는 약간 창작된 이야기같아서ㅠㅠㅠㅠ 왜 이렇게 밝혀진게 없는거야 이 어르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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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91455 작성일
마아...코마카이 코토와 키니스루나 (차홀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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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91463 작성일
진짜 우구이스마루는 찾기 힘들더라. 나는 제작 당시에 기포가 올라와서 망친 검이라고 신경 안쓰다가 뫄뫄 도공이 고쳐서 환골탈태하고 어물로 진상됬다는 카더라를 들었는데, 잘 모르겠네. 윗니와 이야기 보니 어쨌든 기포가 올라와서 망가진 검을 고쳤다는 건 확실한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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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91464 작성일본인도 자기 이름 유래 모른다는데 오죽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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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91478 작성일대표적이건 아시카가 보검이었던거랑 아시카가에서 오가사와라에 하사했던거 그 뒤 몇몇 주인 거친 뒤에 메이지시대 왕실 헌상 정도려나 내가 본 사이트에 기포 얘기는 없었다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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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91500 작성일
wikiwiki.jp/toulove에서 1907년에 헌상되기 전, 수리했다는 말은 있어도 기포 얘기는 없네
구글에서 鶯丸気泡(우구이스마루 기포)로 검색해봐도 나오는 게 픽십 소설 한편 밖에 없쟝... 대충 '헌상되기 전에 수리를 못받아서 기포가 남은 흉한 모습의 우구이스마루가 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내용이었는데 설마 이거 보고 누가 역피셜인줄 안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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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91507 작성일
인줄 알았는데 기포가 아니라 膨れ로 검색하니까 나왔다!
まとめはほぼ丸写しだったので要約を直接書いておきます
『日本刀大百科事典』 第一巻 「鶯丸」の項より
・鶯丸は小笠原家伝来の備前友成の太刀
・嘉吉元年(1441年)、結城合戦での功績により足利義教から小笠原政康に感状(賞状みたいなもの)とともに授けられた。
・『小笠原系図』にある感状には「鶯太刀友成」とあるが、『慶元古文書』には「鶯丸友成」とあるので今日では鶯丸で通っている。
・政康の子孫である越前大野郡勝山城主・小笠原家に伝来。
・元文元年(1736年)9月13日、8代将軍吉宗に台覧
・明治維新後小笠原家を出、宗伯爵家に渡る。
・さらにその後、秋元子爵に1500円で買い取られる。
・さらにその後、田中光顕伯爵に買い取られる。
・明治40年(1907年)11月、茨城県で行われた陸軍大演習の際、茨城県の結城に縁のある刀であるとして明治天皇に献上される。
・献上前、刃に「ふくれ」がかなりあったが、高田庄左衛門に研ぎ直させたところ、完全にふくれが抑えられた。
・刃長約81.8cm、反り2.7cm。地鉄は板目肌に地沸えつく。刃文は直刃、先は彎れ調となり、足入り賑やか。中心はうぶ。「備前国友成」の銘。
参考文献
・寛政重修諸家譜
・刀剣と歴史417
・御物東博銘刀押形 佐藤寒山
※台覧…偉い人に見てもらうこと
※ふくれ…空気が入ってしまった傷で水ぶくれのようなもの。研ぎなどで破れると著しく美観を損なう。
※「中心はうぶ」…茎(銘が入っているところ)が作られた時のまま未加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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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91530 작성일
전공자 아니라서 틀릴 수 있는데 번역해보자면
<일본도대백과사전> 제1권 우구이스마루 항목에서
-우구이스마루는 오가사와라 가에서 전해 내려오는 비젠 토모나리 작의 태도
-1441년, 유우키 전투에서의 공적에 의해 아시카가 요시노리가 오가사와라 마사야스에게 하사
-<오가사와라 계보>에는 "우구이스태도토모나리"라고 되어있으나, <케이겐 고문서>에서는 "우구이스마루 토모나리"라고 되어있기에 오늘날에는 우구이스마루로 불리고 있다.
-마사야스의 자손인 에치젠 오노군 카츠야마 성주・오가사와라 가에 전해짐
-1736년 9/13에 8대 쇼군 요시무네가 태람(높은 분이 봤다는 뜻)
-메이지 유신 후에 오가사와라 가를 떠나 소우 백작가(宗伯爵)에 건너감
-그 후에는 아키모토 자작가에 1500엔에 팔림
-또 그 후에는 타나카 미츠아키 백작에게 팔림
-1907년 11월, 이바라키 현에서 행해진 육군대연습에서, 이바라키현 유우키에 연이 있는 검으로서 메이지천황에게 헌상됨
-헌상 전, 도신에 膨れ가 꽤 있었으나, 타카다 장좌위문(직급 이름)이 수리하여, 膨れ가 완전히 눌렸다.(기포를 없앤다는 뜻인듯)
-(역사가 아니라 검 자체의 길이나 특징 설명이므로 생략)
참고문헌
-번역 귀찮
-도검과 역사417
-이것도 귀찮아양
膨れ : 공기가 들어가버린 상처를 뜻하는데, 물집과 비슷함. 갈아서 깨뜨리면 미관이 현저히 떨어지게 됨.
번역하면서 나도 처음 안 사실이 많쟝 ㅇㅂㅇ
우구가 괜히 귀족처럼 생긴 게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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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91505 작성일칼에 기포 올라오는건 후쿠레라고 부르더라. 검색해보니 후쿠레 생긴? 올라온? 우구가 고치기엔 돈이 많이 드는데 집안은 가난하고 글타고 녹여버리기는 아깝다고 보관해두다가 헌상하려고 보니 아무리 그래도 이 상태로 헌상하는건 안될 일이디 해서 그때서야 수리하고 헌상했다는 썰이 일웹에서 보이던데.. 그래서 일단 칼도 미술품도 못 되는 철을 그래도 보관하던거 보면 소유 가문도 아꼈던건 맞지 않나 뭐 그런 추정도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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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91506 작성일익명님의 댓글
익명 #91551 작성일
안물안궁일지도 모르고 뒷북일지도 모르겠는데
우구이스마루가 있던 오가사와라 가는 다도로 유명한 집안으로, 오가사와라고류다도라는 유파의 시초임. 우구가 나중에는 信嶺系로 가고, 오가사와라류다도는 豊前小倉藩이긴 한데, 우구를 처음 데려왔던 마사야스는 豊前小倉藩와 信嶺系 양쪽의 조상 격이니, 우구의 차덕후 기질은 여기에서 왔다고 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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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91646 작성일헉 그렇구나